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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연인” 혜종 왕무(김산호) - 돗자리 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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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건과 견훤은 군사 요충지 나주를 차지하기 위해 바다와 육지를 오가며 싸웠다. 왕건이 903 나주를 급습해 차지하자 914년까지 견훤의 반격이 이어졌다. 왕건은 10 동안 송악과 철원에서 나주를 오갔다. 왕건의 나주 점령은 나주 오씨 지역 호족의 도움으로 가능했다. 만난 여인이 장화왕후다.

 

샘에서 빨래를 하던 처녀에게 왕건이 그릇을 청하자 처녀는 물을 급히 마시면 체할 있음을 염려하여 바가지에 물을 버들잎을 띄웠다.

처녀가 지역 거대세력 나주오씨 집안의 오다련 딸이었고 훗날 2대왕 혜종의 어머니이자 장화황후가 된다.

 


혜종 왕무는 돗자리 임금으로도 불리었는데 그에 얽힌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왕건은 총명하고도 빼어난 미모의 오씨에게 반하여 그녀를 ()으로 데려가 동침했다. 그러나 전쟁터인 야전 막사의 침구가 여의치 않아 돗자리 위에서 관계를 가졌다.

 

그러나 오로지 쾌락만을 위한 왕건은 처녀가 임신할 까봐 두려웠고 결정적인 순간 돗자리 위에 사정을 버렸다.

총명한 오씨는 정액을 가락에 묻혀 자신에게 다시 삽입하였고

결국 임신을 하였다.

훗날 아이를 앞세우고 왕건을 다시 찾은 처녀는 왕건의 아들임을 주장하는데 아이의 뺨에 돗자리 자국이 선명하여 부인할 없었다고 한다.

결국 왕건은 아이를 친자로 인정했고 여인을 2부인으로 삼았다.

훗날 그녀는 장화왕후가 되고 돗자리 문양이 있었던 아이는 왕건에 이어 고려 2 혜종이 되었다. 이런 이유로 혜종은 돗자리 대왕으로도 불렸다.

 

그러나 돗자리에 뭍은 정액으로 임신하여 아이를 낳는 것도 그렇고 아이의 뺨에 돗자리 무늬가 새겨졌다는 것도 황당한 이야기이다.


드라마나 역사책을 보아도 있겠지만 2대왕 혜종은 외가의 세력이 약하여 강력한 외가 세력을 등에 업은 이복 동생들로부터 호시탐탐 왕의 자리를 위협받았다.

이로 인하여 근심이 끊이질 않았으니 얼굴에 주름살이 날이 없었다.

근심 많은 왕이 돗자리 같은 주름을 항상 달고 있으니 돗자리 임금이라 불리었다는 얘기도 전한다.

하지만 보다 사실에 가까운 이야기는 이복 동생들이 혜종을 음해하기 위하여 그의 외가가 미천함을 놀리고 비아냥거리기 위하여 퍼뜨린 이야기라는 설이다.

아마 이것이 가장 유력한 이유이지 싶다.



아무튼 이런 약한 세력 탓에 박술희의 도움으로 세자에 책봉되어 왕위에 올랐지만 동생들에 의해 왕위를 위협받는 생활이 계속되었다.

외척 왕규가 왕요(홍종현), 왕소(이준기)의 왕위 찬탈 시도를 보고하기도 했으나 이를 제어할 힘이 없던 혜종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 했고 이에 불만을 품은 왕규는 외손자 광주원군을 새로운 왕으로 세우려고 여러차례 왕을 살해하려 하는데 번번이 실패한다.

이런 혼란 중에 혜종은 재위 2년 째인 945년 병으로 죽는 데 이때 나이가 34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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