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고려는 왕건의 창업 이후에 광종 대에 비약적인 발전을 한다.
극중에선 왕소는(광종 이준기) 끔직한 상처로 철가면(?)을 쓰고 나오지만 3대왕 정종 왕요와 동복 형제로 든든한 외가를 둔 귀공자다.
이복 형 2대 혜종의 자리를 호시탐탐 노리다가 그가 죽자 동복 형 왕요의 즉위를 도왔고,
정종 또한 요절하자 뒤를 이어 4대왕 광종이 된다.
최수종이 주인공으로 나왔던 유명한 사극 "태조 왕건"에 이은 후속작 "제국의 아침"이 광종을 주인공으로 한 드라마였다.
그 드라마에서는 2대 혜종의 이야기부터 나왔는데 노영국이 병약한 혜종의 역을 맡았고
(사실 혜종은 전혀 병약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버지 왕건을 따라 전장을 누볐고 왕이 된 이후에도 취미가 격구일만큼 강인하였다. 그러나 역사는 승자의 기록인 만큼 승자인 정종,광종의 입장에선 이복형의 왕위를 찬탈했다기 보다는 선왕이 병약해서 일찍 죽었고 선왕의 아들이 있으나 어리다는 이유로 동생이 왕위를 잇는다는 것이 더 명분이 있지 않을까? 살아서는 돗자리 임금이라고 놀림받던 혜종에게 덜 미안한 방법일 수도 있고...)
3대 정종은 최재성, 4대 광종은 김상중이 맡았었다.
아무튼 광종 즉위 후 호족들의 세력을 견제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하여 여러가지 정책을 실시한다.
노비안검법을 시행하여 억울하게 노비가 된 자들을 해방시켰다.
이는 호족들의 사유재산 즉 노비들을 풀어줌으로서 그들의 세력을 약화시키는 효과가 있었고 백성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물론 왕권 국가에서 백성 지지는 중요치 않지만) 중요한 정책이었다.
게다가 중국(후주)에서 귀화한 쌍기를 등용하여 양인 이상이면 응시할 수 있도록 과거제를 실시하기도 하였다.
역시 대를 물려 벼슬을 하는 호족들을 견제하기 위함이었다.
아버지 태조가 호족들과의 혼인 정책으로 후삼국을 통일하는 위업을 이뤘지만 이복 형 혜종과 동복 형 정종의 재위시절 호족 세력의 왕권 도전 및 견제를 목격한 광종으로서는 당연한 조치들이었다.
광종은 재위기간내내 피의 숙청으로 유명하다.
왕의 권위에 도전하는 호족세력들을 가차없이 숙청했고 조카인 혜종과 정종의 아들도 죽였다.
심지어 대목황후와 외아들 경종도 반대파로 생각하고 미움과 분노로 다루었다.
마치 궁예의 말년처럼...
막강한 외가 충주 유씨 세력에다 첫째 부인 황보씨까지 외척으로 두었기에 왕자시절 세력은 누구보다 막강하였으나 왕이 되고 나면 모두 외척이 된다.
그들을 모두 발 아래 두고 제대로 통치를 하기 위해서는 막강한 왕권이 절실하였다.
참고로 둘째 부인은 이복 형 혜종의 딸이다.
혜종이 얼마나 왕요, 왕소를 두려워 했는지 짐작케하는 대목이다.
광종(왕소)은 고려의 기틀을 다진 왕이지만 형들인 혜종과 정종 시절 왕에 도전하는 귀족 세력들을 보아 온 나머지 그들을 철저히 지배하기 위해서는 숙청과 공포 정치가 필요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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