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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이슈

우리 조상들과 민족 최대의 명절 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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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 최대 명절 중 하나인 추석을, 과연 옛 선조는 문집에서 어떻게 표현하고 있을까?

 

일 년 중 가장 큰 보름달이 두둥실 떠오른 상태를 조선 시대의 왕과 문인들은 작품에서 즐겨 다뤘다.

 

□ 조선의 제22대 왕 정조(1752∼1800)는《홍재전서》의 <중원일 본각에서 재숙하면서 여러 각료에게 읊어 보이다[中元齋宿本閣 唫眎諸閣僚]>라는 시에서 ‘가을빛이 화려한 집 푸른 이불에 아른거리니, 일 년 중 가장 밝은 달이 마당에 이르렀네(秋色綾廬撼被靑 一年明月到中庭)’라고 추석의 휘영청 밝은 보름달을 묘사했다.

 

□ 조선 중기의 문인인 최립(1539∼1612)은《간이집》호행록의 <봉산에서 중추일 밤에 짓다[鳳山中秋夜有作]>라는 시에서 “구름은 비 내린 뒤라 말끔하고, 달은 중추라 한껏 둥글구나 (雲從雨後無些子 月爲秋中更盡分)”로, 또 다른 조선 중기의 문신인 장유(1587∼1638)는《계곡집》의 <한가위 보름달[中秋月]>이라는 시에서 “오늘 밤 바라보는 팔월 보름달, 만 리 구름 헤치고 두둥실 높이 솟았도다(今夜中秋月 高開萬里雲)”로 둥글고 밝은 달의 아름다움을 각각 말했다.

 


□ 추석의 풍속 내용은 18세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한국 최대의 실학자이자 개혁가인 정약용(1762∼1836)과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조호익(1545∼1609), 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이규경(1788∼1856)의 작품에서도 발견된다.

 

□ 정약용은《다산시문집》의 <추석에 시골 마을의 풍속을 기록하다[秋夕鄕村紀俗]>라는 시에서 “갠 날씨에 시골 마을 즐거워서 들레어라, 가을 동산의 풍치는 과시할 만도 하구려, 지붕엔 넝쿨 말라서 박통이 드러났고, 언덕엔 병든 잎새에 밤송이 떡 벌어졌네(晴日鄕村樂意譁 秋園風味向堪誇 枯藤野屋瓜身露 病葉山坡栗腹呀)”라고 밝혔다.

 

□ 조호익은《지산집》에서 “추석(秋夕) 등의 속절(俗節)은 온 천하 사람들이 명절이라고 하면서 음식과 안주를 장만하여 잔치를 벌이면서 즐기네”라고, 이규경은《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추석절을 한가위[漢嘉會]라 하여, 술ㆍ고기와 기타 음식을 많이 장만하여 서로 주고받는다.”라고 추석의 풍속을 각각 서술했다.

 

□ 조선 중기의 문신인 정온(1569∼1641)은《동계집》에서 “1년 중의 명절로는 추석(秋夕)이 더욱 성대하므로 머슴인 우시(牛厮)나 수의사인 마의(馬醫)의 자식들과 농부인 전부(田夫)나 상인의 심부름꾼인 상례(商隷)의 손자들까지도 그들의 조상 무덤을 찾아가서 잡초를 제거하고 술잔을 올리지 않는 자가 없습니다.”라고 하였는데, 이를 통해 조선 사람이면 누구든지 추석에 성묘를 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조선 중기의 학자이자 문신인 김장생(1548∼1631)은《사계전서》에서 “성묘를 위해 휴가를 주는 것은 나라의 법전에 기재되어 있는 일이므로 추석이 되면 규례대로 휴가를 받으려고 생각했는데, 때마침 나라에 큰 옥사가 있어서 감히 휴가를 청하지 못하였습니다.”라고 했다. 이를 통해 조선 시대의 관료들이 추석에 휴가를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유추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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