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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선대사의 예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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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허! 애석한지고.... 어찌 기장을 심을 땅에 삼을 심었단 말인가? 쯧쯧....."

신라 제49대 헌강왕이 등극한 이듬해 4월, 송악의 호족인 왕융은 송악산을 마주한 벌판인 금돼지터(금돈터)에 자신의 집을 짓는 공사를 한창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나가던 한 객승이 그 모습을 보고 탄식하듯 그렇게 읊조렸다.

객승은 근처 느티나무 아래에 앉아서 잠시 땀을 식히며 한마디 더 덧붙였다.

"이 집의 주인은 사리에 밝아서 이곳을 집터로 골랐는가? 그렇다면 그 역시 혜안이 있는 이로세."

처음에는 지나가는 객승의 객쩍은 소리로만 듣고 있던 왕융의 부인은 무언가 짚이는 구석이 있어 얼른 남편을 찾았다.

"지금 요 앞 느티나무 아래에 한 객승이 앉아 있는데 우리 집터를 보고 기장을 심을 땅에 삼을 심었다 하며 이 집터의 주인은 혜안이 있다는 둥 알 수 없는 말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게 무슨 뜻인지요?"

아내의 말을 들은 왕융은 그 말이 예사롭지 않음을 직감하고 황급히 느티나무 아래로 달려갔다.

그러나 이미 객승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이제 막 푸르러 가는 느티나무 그늘만 부신 햇살 아래에 그 음영이 짙게 깔려 있었다.

왕융은 객승이 사라진 듯한 길을 잰 걸음으로 쫓아갔다.

'필시 무슨 곡절이 있을게야. 그런 말을 할 정도라면 틀림없이 예사 스님은 아닐 것이다.'

왕융은 산길로 통하는 좁은 고갯길에서 겨우 그 객승을 따라잡을 수 있었다.

"스님! 스님!"

왕융은 큰 소리로 객승을 부르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몇 번의 부름에도 뒤를 돌아보지 않던 객승이 천천히 고개를 돌린 것은 왕융과의 거리가 불과 서너 걸음도 채 안 되었을 때였다.

"무슨 일이시오?"

그렇게 묻는 객승의 얼굴은 해를 등지고 있어서인지 눈부신 햇빛이 후광처럼 드리워져 있어 더욱 신비로워 보였다.

"스님! 잠시 여쭐 말씀이 있습니다."

"....."

"스님께서는 혹시 도선대사님이 아니신지요?"

객승은 길 옆 바위에 걸터 앉으며 짚고 있던 석장을 그 옆에 비스듬히 세워 놓았다.

"그렇소! 소승이 도선이오만....."

"대사님을 몰라 뵌 무례를 용서하십시오."

왕융은 그렇게 말하며 다자고짜 땅에 엎드려 큰 절을 올렸다.

당시 도선대사는 신라 제일의 명승으로서 온 나라 안에 그 명성이 자자했다.

그는 불도가 신승의 경지에 이르렀으며 당나라에서 풍수지리를 공부하고 돌아온 후에는 그 도력이 더욱 높아져 미래를 예견하는 능력까지 두루 갖춘 그야말로 당대 최고의 고승이자 풍수지리의 대가였다.

"어허! 일어나시오. 소승이 민망하구려."

그러나 왕융은 여전히 땅에 엎드린 채 말을 이었다.

"대사님을 누추하나마 저희 집으로 모시고자 합니다. 부디 허락하여 주십시오."

도선대사는 한바탕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뭔가 소승에게 물어볼 말이 있어 그런 것 같은데 그럴 필요 없소. 본시 중이라 함은 구름을 이불 삼고 돌을 베개 삼으니 천지사방 집이 아닌 곳이 없소. 그러니 할 말이 있으면 예서 하시오."

과연 도선대사다운 대답이었다.

왕융은 속으로 감탄하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대사님, 좀 전에 대사님께서 저희 집터를 보시고 하신 말씀의 진의가 궁금하여 이렇게 대사님을 쫓아왔습니다."

"그 집의 주인장이시오?"

"예, 그러하옵니다, 대사님."

도선대사는 눈을 들어 송악의 지세를 한 번 둘러보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곳을 집터로 삼은 데에는 혹 무슨 연유가 있으시오?"

"전해 듣기에 제 아버지께서 용신(龍神)의 도움으로 그 곳에 터를 잡으셨다 들었습니다."

"음... 과연 그랬군.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도선대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눈을 감았다.

그러더니 눈을 뜨고 불법을 설하듯 엄숙한 목소리로 말했다.

"잘 들으시오. 지금 댁의 집터는 백두대간의 줄기를 따라 내려온 정기가 이 곳 송악에 이르러 그 결집을 이룬 지점이니 과연 명당 중의 명당이오. 또한 댁은 용신의 기운을 지녀 물의 운명을 타고났소. 그러니 집을 짓되 물 수(水)자 형태로 지을 것이며 반드시 서른여섯 채를 지어야 하오."

도선대사의 말에 왕융은 숨이 멎는 것 같았다.

"또한 내년에 아들이 태어날 것이니 반드시 그 이름을 건(建)이라 지으시오. 그리하면 후일 대대손손 영광을 누릴 것이오."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그 아이가 자라면 우린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오."

"대사님, 그 때가 언제인지..."

그러나 도선대사는 그 말을 끝으로 바위에서 일어나 석장을 짚고는 다시 갈 길을 갔다.

왕융이 미처 인사를 올릴 새도 없었다.

넋이 나간 듯 땅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던 왕융은 도선대사가 고개 너머로 사라진 뒤에야 자리에서 일어났다.

왕융은 도선대사가 그러했듯 고개를 돌려 송악을 내려다 보았다.

'아들이라.... 대대손손 영광을 누릴 아들이라....'

벅차 오르는 가슴을 지그시 누르며 왕융은 고갯길을 내려왔다.

도선대사의 말이 가슴속에서 끝없이 메아리치며 왕융의 전신을 휩쓸고 지나가는 것 같았다.

맑고 청명했던 송악산 골짝마다 용의 조화인 듯 자욱한 봄 안개가 일고 있었다.

왕융은 더욱 천천히 걸었다.

도선대사가 송악으로 다시 돌아오는 날이 이 자욱한 안개의 끝이겠거니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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