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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예 출생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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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의 촌장 앞에 불려온 아낙네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방바닥만 쳐다 보았다.

방 안에는 촌장을 위시한 마을의 여러 노인들이 굳은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무슨 일로 불렀는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을 테지?"

"....."

아낙네는 말없이 그저 고개만 조아리고 있을 뿐이었다.

"더 이상 말할 것도 없소! 우리 마을에서 그 놈을 내쫓기만 하면 만사가 다 편해질 거요."

옆에 앉아 있던 노인 한 명이 제법 언성을 높여 끼어들었다.

"촌장 어르신, 불쌍한 아이입니다. 제가 앞으로 각별히 단속하겠으니 한 번만 용서를...."

"어허, 이게 어디 한 두 번이라야지!"

노인이 다시 한 번 언성을 높였다.

"그 놈이 하는 짓거리를 생각해 보시오, 온 동네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다니잖소? 내 지금껏 살아오면서 그 놈 같은 망나니는 본 적이 없소."

다른 노인이 말참견을 하고 들었다.

"이제는 마을 사람들 모두가 그 놈이 사람이나 죽이지 않을까 싶어 불안해 하고 있소. 이게 어디 열 살짜리 아이를 두고 하는 소리겠소?"

아낙네는 소리없이 흐느끼기 시작했다.

"안됐지만 이런 일은 나 혼자 결정할 일도 아니고 워낙 마을 사람들의 공론이 강경한 터라 어쩔 수 없네."

"어르신."

촌장을 비롯한 마을 노인들은 어느 누구 하나 아낙네의 말을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아낙네는 눈물로 호소했지만 더는 어쩔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온 아낙네는 방으로 곧장 들어가지 않고 뒤꼍에 있는 미루나무 아래에 앉아 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노을이 지고 주위가 어둑해져서야 아낙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부엌으로 들어간 아낙네는 늦은 저녁을 지어 방으로 가져갔다.

방에는 열 살짜리 아들이 불도 켜지 않은 채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희미한 어둠 속에서 우두커니 앉아 있는 아들은 불쌍하게도 한 쪽 눈이 없는 애꾸였다.

아낙네는 불을 밝히고 아들에게 더운 저녁 밥을 먹였다.

아들은 배가 고팠던지 밥 한 공기를 단숨에 비웠다.

저녁상을 물린 후 아낙네는 아들을 바로 앉히고 큰 절을 했다.

아들이 깜짝 놀라며 아낙네의 치맛단을 붙잡고 늘어졌다.

"어머니, 잘 못 했습니다. 왜 이러시는 겁니까?"

그러나 아낙네는 아들을 다시 바르게 앉히고 말했다.

"마마, 지금부터 소인이 하는 말을 새겨 들으셔야 합니다."

"어머니, 마마라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런 말은 나랏님께나 쓰는 말이 아닙니까?

"그러하옵니다. 마마! 지금은 비록 이렇게 비천하게 살고 있사오나 마마께서는 원래 이 나라의 왕자님이셨습니다."

아들은 왕자라는 말에 기가 질린 듯 말을 잃었다.

"마마! 소인은 마마님을 모시던 유모였답니다. 마마께서는 억울한 오해를 받으시어 죽임을 당할 뻔 하였사온데..."

"그게 정말입니까? 어머니!"

"마마, 어머니라니요, 당치 않으십니다...."

유모는 흐느껴 울었다.

"마마, 소인이 이 같이 말씀 드리는 것은 부디 행실을 바르게 하시고 덕을 쌓기를 바라는 간절한 염원에서이옵니다. 이제 이 마을에서는 더 이상 살 수 없게 되었사오니 날이 밝는 대로 짐을 꾸려 다른 마을을 찾아 떠날까 합니다."

"울지 마세요, 유모. 그래도 사지에서 나를 살리고 또 지금껏 키워준 것은 모두 어머니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내 출생의 비밀을 안 이상 더는 이런 망나니로 살지는 않겠습니다."

나이 답지 않게 의젓하게 말하는 궁예를 보며 유모는 적이 안심이 되었다.

궁예가 없어진 것은 다음날 아침.

간밤에만 해도 옆에서 곤히 잠든 것을 보았는데 어느새 종적을 감춘 것이었다.

열살 밖에 안된 궁예가 새벽이슬을 맞으며 찾아간 곳은 세달라라는 절이었다.

이로써 궁예는 본인의 출생의 비밀을 알고 큰 인물이 되고자 자기 수양을 위한 길을 떠났다.

후고구려를 건국한 궁예의 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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